김기라 개인전

 

 

■ 전 시 명 : 『 유리 깃털 』 김기라작가 개인展

■ 오 프 닝 : 2012년 03월 02일(금) 오후 6시

■ 전시장소 : 갤러리 세줄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464-13번지)

■ 전시기간 : 2012년 03월 02일(금) - 03월 31일(토)

■ 관람시간 : 월 – 토 / 10:00 ~ 6:30 , 일,공휴일 / 휴관

2012년 갤러리세줄의 첫번째 전시로 “김기라작가 – 유리 깃털” 展을 2012년 03월 02일 ~ 03월 31일까지 준비하였습니다. 김기라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도예를 수학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유리과정을 마치고 귀국, 25년 가까이 유리작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구적으로 유리를 조형적인 재료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미국 Studio Glass Movement의 정신을 도입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일상생활의 경험 등을 일상적인 오브제를 이용해 은유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순간과 영원, 담음과 비움, 밝음과 어둠, 강인함과 연약함 등과 같은 양면관계를 유리만이 소유하고 있는 물성인 투명, 반투명, 불투명성을 이용해 끊임없이 새로운 조형언어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한국 유리작가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에 주목, 수묵화의 농담과 선묘적인 효과를 유리의 투명성과 결합시킨 정적인 이미지의 작품들을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자연계의 평범한 물상을 통해 인간의 정감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유가적 심미방식에 입각해, 깃털이라는 하나의 물상이 유리라는 물성을 통해 어떻게 재현되는가 하는 것을 직설적 혹은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 개 이상의 유리 깃털과 빛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등으로 재현된 실체는 작가의 심미적 혜안(慧眼)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것을 관람하는 우리에게도 동참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갤러리 세줄 대표 성주영 (초대의 글. 발췌)

 

■ 전시내용

가까이 듣기’대담(I,II) 중 (김기라작가 인터뷰에서 발췌)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다.

: 이번 전시를 앞두고 뒤를 한번 돌아다보았다. 유리라는 물성에 매료되어 홀린 듯 시작했던 초기의 빛과 물과 정물 등을 주제로 진행된 작업들. 이후로 다시 등장하게 될 사과 작업과 수없이 반복된 조형훈련들을 밑거름으로 귀국 후, 가진 첫 개인전. 그렇게 작가와 교육자, 가정주부라는 세 꼭지 점 사이를 줄타기하는 긴장감 속에서 작업은 삶이 되었고 다시 삶의 모습은 작업의 소재로 자리 잡았다. 1997년 이후 진행 된 동양적이고도 수묵화적인 모노톤의 작업은 한국유리작가로서의 정체성 찾기이자 마음으로 보기의 시작이다.

: HOUSE 연작은 부모님과의 사별 이후 ‘집’이란 무엇일까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복합적인 생각을 풀어낸 작품이다. 집을 구성하는 건축학적 조형적 요소들과 함께 집의 의미를 솔직하면서도 은유적이기에 충분한 나만의 유리집으로 녹여 지었다. 대나무, 조약돌, 소나무 그리고 사과. 사과는 나에게는 ‘사랑’이자 ‘용서’, ‘화해’ 뭐 그런 의미였고 이것들은 내가 눈이 아니라, 생각이 아니라, 마음으로 원하는 집에 담겨져야 할 바로 ‘그것’이었다.

▶유리 깃털은 허공으로 날려 보내기 위함이 아니다.

: 두렵기도 한 일이지만 나를 솔직히 응시해 보았다. 제대로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드리고 맞닥뜨린 부모님과의 영원한 이별…작업 속에서의 열망과 방황…속박이라고 생각했던 일상들…그리고 또…. 내가 살아온 날들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간과 함께 퇴적된 기억들은 나를 잡아주고, 지탱하며 살아가게 하고 또는 좌절시키는 감정들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 새가 하늘을 날 때 허공을 날고 있는 것 같지만 새의 깃 밑으로는 새가 거쳐 온 고단함이 켜 켜로 쌓여있다. 새는 허공을 나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딛고 서 있는 것이다. 나의 유리 깃털들도 허공으로 날려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켜 켜로 쌓아 땅-수평-을 그리고 하늘-수직-을 딛고 서게 하기 위해서다. 사실 천 개 이상의 유리 깃털을 만든 시간을 보낸 후에야 허공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 왜 깃털인가? 하는 것 보다는 왜 ‘두루미’ 인가하는 질문이 맞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새는 하늘과 인간 사이의 전령이자 죽음 이후의 길잡이 또는 귀혼(歸魂)을 의미한다. 특히 두루미의 경우 우리네 문화에서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신성함과 극선(極善) 그리고 흑과 백으로만 조화된 깃으로 인해 완벽한 음과 양을 상징이기도 하다.

: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찾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답은 두루미였다. 두루미의 일부분이지만 전체이기도 한 두루미 깃을 어렵게 구한 뒤 나는 무의식적이라고 할 만큼 반복적으로 천 개 이상의 유리 깃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수직으로 수평으로 그리고 원으로 쌓고 두르고 녹이고 허공에 놓았다.

: 새의 깃털은 의도적으로 방향성과 편향적 기울기를 갖는다. 바람을 잘 타기 위한 물리․역학적 진화의 산물이라고 한다. 나의 유리 깃털도 내부로 혹은 외부로 향한다. 깃의 방향에 의해 나의 내면은, 내부로는 강해지고 외부로는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 유리 깃털은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 문 앞에 기꺼이 서 있다.

: 내가 보이지 않는 기억들에 의지해 살아가듯이 새를 날게 하는 허공은 새의 깃을 떠받치며 감싸고 구속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새는 구속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유롭다. 그렇다면 나를 구속하는 것은 내 주변과 기억이 아니라 바로 ‘나’인 것이다.

: 두루미 깃은 나에게 죽음에 대한 이해와 화해였고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나아가 닫혀 보이지 않던 세계로 통하는 문이다.

▶ 문을 여는 방법을 깨닫는 그 순간으로 충분하고 행복하다.

: 대나무를 그린 묵죽(墨竹)이 더 이상 대나무가 아닌 것처럼, 나의 유리 깃털들은 더 이상 깃털만은 아니다. 중력을 거슬러 허공을 딛고 선 나의 깃털은 스스로 알을 깨고 이 세상을 나오기 위한 나의 용기이자 자유의 선언이다.

: 그 끝이 아름답지 않아도 좋다. 내 손에 박힌 군살처럼 고통스럽거나, 맺힌 허무를 달콤해 하면서 외로움에 내맡겨져도 상관없다. 600℃의 뜨거운 열 속에서만이 움직이는 유리 깃털처럼, 난 그렇게 자유와 허공과 실존을 딛고서 문을 연다. 문을 여는 방법을 깨닫는 그 순간으로 충분하고 행복하다. 시작 한 것이 중요하다고 위안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