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개인전

 

 

전 시 명 : 박지훈 <Beverages for Anxious Folks>

■ 오 프 닝 : 2013년 10월 11일(금) 오후 6시

전시장소 : 갤러리 세줄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464-13번지) T. 02-391-9171

전시기간 : 2013년 10월 11일(금) ~ 10월 25일(금)

관람시간 : 월 – 토 / 10:00 ~ 6:30 , 일요일 휴관

 

Beverages for Anxious Folks

근심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음료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찾는다.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행위도 이러한 자기방어의 범주에 포함된다. 나는 그럴 때 잠을 청한다. 주로 가볍게 술을 한잔하고 잠을 자는 것이 깊은 잠을 자기에 수월하다. 늦은 시간까지 긴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 전날까지 나를 괴롭혔던 고뇌들은 대부분 사라져있다.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내가 잠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것은 두 가지 다른 히스토리로부터 만들어진 습성인데, 하나는 어린 시절 텔레비전 화면이 흑백이었을 때 9시 뉴스가 시작되기 직전 항상 캠페인같이 방송화면에 ‘어린이들은 이제 잠 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공익광고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잠 잘 시간이 되면 꼭 자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었고 또 하나는 군대복무 신병시절 악질 같은 고참이 잠을 안재우고 일을 시켜먹었던 꽤 긴 시간 동안 겪었던 경험의 트라우마가 잠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다른 양상이지만 생각해보면 하나는 최면에 의한 잠재인식에 묻은 stressor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고문이 만들어낸, 뇌의 비교적 바깥쪽에 자리함직한 stressor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의 것은 사회적 장치가 만들어 낸 촌극에 의한 피해이고 후자는 한 개인이 저지른 범죄에 의한 후유증이라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도 체험해 보았다. 사람마다 증세가 다 다르고 무척 다양하다는데 나의 것도 평범하진 않았던 것 같다. 약간의 광장공포, 대인기피라든지 또는 과대망상 등이 적당히 잘 칵테일 되어 우울이라는 마음의 감기가 되었다. 나의 자기치유 노하우는 여러 가지 였는데 동네를 산책하는 매우 소극적인 방법부터 시작해서 산에 오르기도 했고 어떤 날은 그냥 오르는 게 아니라 뛰기 까지 했다. 비디오게임을 미친 듯이 한적도 있었는데 이건 오히려 증세를 악화시켰다. 사우나에 가서 마사지를 받았더니 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지만 이건 자주 하기엔 비용문제가 있었다. 2차적인 증세로 소화계통에도 문제가 생겨서 한동안 자주 설사를 하거나 혹은 먹은 음식을 토해내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은 나에게 ‘보신’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지게 하였는데 그 보신이라는 것이 대단한 보양식을 먹는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건강하게 식사하고 마시는 음료 정도를 평소보다 조금 더 까다롭게 고르는 수준 이었다. 한번은 탄산음료를 마시고 트림을 거하게 한 적이 있었는데 순간 창피한 일임에도 기분이 격하게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으면 이 이상한 ‘의식(ritual)’을 치르는 습관이 생겼다.

우리 동네 목욕탕에 가면 폭포같이 강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냉탕이 있는데 하루는 어른 한 분이 자기의 아랫도리를 그 폭포수에 마사지 시키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내가 알기론 포유류 동물 중에 사람만 남성기가 뼈가 없이 해면체로 되어 있어서 이 해면체가 파괴되면 복구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분은 아마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하여 그런 무지한 행위를 하였겠지만 그 이전에 어떤 Stressor가 그에게 그런 ‘제의’를 치르도록 부추겼을 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약수터에 병균이 드글드글한 물을 떠가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 성령 충만한 나머지 지하철에서 불신지옥을 외치는 전도자들, 멀쩡한 딸의 손목을 끌고 성형외과로 향하는 어머니들…… 모두 그 행위가 옳든 그르든 그들 스스로 자신에게 엄습한 ‘악’에 대항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절규이다.

내 마음의 감기는 작업을 하면서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한 것 같다. 작업실에서 딱딱한 재료들을 자르고 갈고 구멍을 내고 그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연결하면서 관계를 지어내고 하는 과정 속에서 내 안에 있던 작은 악마가 녹아 마음속의 하수구 어디론가 흘러내려가 버렸다.

전시를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있는 나의 경험을 그대로 작업에 반영하는 것이 순리적으로 맞겠으나 자칫하면 그 결과가 마치 ‘미치광이의 일기’같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므로 나와 나의 이야기는 살짝 뒤에 감추어 둔 채(온전히 모두 감추어 지지는 않겠지만) 내 이웃의 이야기들을 소설과도 같이 나의 언어로 녹여내어 진지하게 때로는 농이 섞인 어조로 풀어내어 본다. 나의 음료는 목에 걸린 갈증을 해소해 내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걸려있는 그 찜찜하고 기분 나쁜 덩어리들을 녹여내어 주기도 한다. 전시를 통하여 좋은 이웃을 만날 수 있다면 좋은 술을 빚어내듯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재료를 모으고 다듬고 갈아내어 그 추출물들을 작은 병에 담아 그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다.